30년의 방치가 만든 기적
멸종위기종이 돌아온 습지
걷기만 해도 살아있는 박물관
“사람 손을 거두니 오히려 자연이 돌아왔죠.” 전북 고창의 한 골짜기, 계단식 논과 마을이 사라진 자리에 지금은 초록의 물결이 넘실댄다.
30년간 아무도 돌보지 않은 땅이 생명으로 가득 찬 습지로 변한 곳, 바로 ‘운곡람사르습지’다.
여름이면 가시연꽃이 피어나고, 물웅덩이마다 멸종위기종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을 걷는 일은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복원된 자연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운곡람사르습지는 전북 고창군 아산면에 위치한 산지형 저층습지로, 면적은 약 1.93㎢에 달한다.
1980년대 영광원자력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운곡저수지가 들어서자 인근 9개 마을 주민이 집단 이주했고, 남겨진 땅은 30여 년간 방치됐다.
그 시간이 오히려 생태계 복원의 기회가 됐다. 지금은 약 850종의 생물이 서식하며, 그중에는 수달·담비·삵·팔색조·붉은배새매 같은 멸종위기종과 천연기념물 황조롱이도 포함돼 있다.
습지 내부는 안덕제·운곡제 등 자연형 둠벙이 생태연못과 연결돼 고창천, 인천강, 곰소만으로 이어진다. 이를 체계적으로 둘러볼 수 있도록 4개의 도보 코스가 마련돼 있다.
1코스는 3.6km로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되며, 2코스는 9.6km, 3·4코스는 각각 10.1km로 3시간 이상 걸린다.
코스에 따라 고인돌 유적지, 청자도요지, 전망대, 물맞이폭포 등 지질·문화자원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또한 친환경 탐방열차가 하루 7회 운행되며, 초등학생 이하 1천 원, 중학생 이상 2천 원, 65세 이상은 무료다.
운곡람사르습지는 2011년 국가습지보호지역 지정과 람사르협약 등록을 시작으로, 2014년 국가생태관광지역, 2017년 전북서해안 국가지질공원 인증까지 받았다.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입장료는 없지만, 탐방열차는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에는 운행하지 않는다.
방문 시 차량 진입, 쓰레기 투기, 생물 채집 등은 금지되며, 해설 프로그램 예약을 통해 전문가와 함께 습지를 깊이 탐방할 수 있다.
30년의 시간 동안 자연이 스스로 복원한 ‘운곡람사르습지’. 여기서의 한 걸음 한 걸음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자연이 만나는 여정을 뜻한다.